제6장 2000년대 전주고 야구=
제1절 야구부 부활을 꿈꾸며
1. 후원회 결성, 지역대회 선전 /
전주고 야구부는 2001년 5월 9일 전주종합야구장에서 열린 제1회 전주·군산 고교체육대회 겸 제82회 전국체전 2차 선발전에서 군산상고를 6대 5로 누르고 대회 첫승과 전국체전 출전자격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또한 2004년 5월 24일 군산공설운동장에서 벌어진 전국체전 예선 2차전에서도 군산상고를 6대 2로 꺾고 1, 2차전을 모두 승리, 전북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2. ‘선수 가뭄’ 위기 딛고 부활 채비
이처럼 전라중 선수들이 전주고 진학을 꺼린 것은 당시 전주고 야구 성적 부진으로 졸업 후 대학 진학이나 프로팀 진출이 어려울 것이란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감독 영입 직후인 2006년 전고는 전국 규모 대회에서 보기 좋게 우승, 동문과 재학생 선수들의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줬다.
제2절 전국체전 ‘금!’- 네번째 정상 등극
1. 제87회 전국체전 공동우승
마침내 2000년대 전고 야구의 첫 우승 승전보가 전해졌다. 전주고 야구부는 2006년 10월 23일 제87회 전국체육대회(경북)에서 광주일고와 공동우승했다. 호남의 명문 전주고와 광주일고가 결승에 올랐으나 우천으로 23일 예정된 결승이 취소되는 바람에 두 학교가 공동우승했다. 전주고는 대전고를 4대 1, 천안북일고를 5대 1, 안산공고를 3대 2로 각각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전주고 야구의 전국체전 우승은 지난 1979년 제60회 대회 이후 27년 만이며 사상 네 번째 전국 정상 등극(1985년 제39회 황금사자기, 1998년 제20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포함)이었다.
2005년 당시 전고 야구선수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통틀어 12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주전 투수와 포수가 장래에 대한 불신으로 타교로 전학 가는 등 전고는 본선 16강에 오른 전국 고교 중 최약체로 예상됐다. 그러나 “본선 1회전만 통과해도 할 일은 다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전고 야구부는 본선에서 이변과 파란을 일으켰다.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대전고, 천안북일, 안산공고를 맞아 승승장구, 그것도 모두 역전승을 거두고 달렸다. 특히 10월 20일 포항에서 열린 강호 천안북일과의 8강전에서 패색이 짙던 경기를 뒤집자 전북야구협회 채수하 회장과 서종무 전무, 전라북도 체육회 이대원 사무차장 등은 현장에서 선수단을 얼싸안고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전국체전에서의 이중 우승
이 대회에서 전고는 야구뿐 아니라 농구도 우승, 사상 첫 야구·농구 동반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전고 농구는 준결승에서 삼일상고를 제압(91대 82)한 뒤 10월 23일 결승에서 난적 용산에 94대 81 승리를 거뒀다. 전국체전 선수단 해단식에서 박성기 전주고 야구 감독, 김만진 전주고 농구 감독은 각각 지도자 포상금 100만 원씩을 받았다. 1985년 황금사자기 대회 우승 이후 2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모교에 우승컵을 안긴 박성기 감독(당시 40세)은 모교 64회 동문이다. 전주 출신인 박 동문은 왼손잡이였던 것을 계기로 중앙초등 4년 때 처음으로 야구공을 손에 쥔 뒤 전라중과 전주고, 원광대를 거쳐 프로팀 쌍방울 레이더스 주전으로 활약했다. 성균관대와 서울고에서 코치 생활을 했으며 2005년 8월 당시 전주고등학교 교장 오근량 동문(40회)으로부터 침체에 빠진 야구부를 다시 부흥시켜달라는 간곡한 제의를 받고 처우 등이 열악함에도 모교 사랑 마음에 감독직을 흔쾌히 수락, 취임 1년 만에 야구부를 전국 정상에 올려놨다. 취임 당시 고작 12명의 선수밖에 없던 야구부가 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박 감독의 땀과 지도력이 빚은 결실이었다. 87회 전국체전 우승 주역인 임태준과 장지환은 각각 현대유니콘스와 동국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 제29회 대붕기 준우승 /
전주고 야구부는 2007년 7월 16일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제2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성남서고에게 0대 2로 패해 아쉽게 준우승했다. 지난 1998년 대회 우승팀인 전주고는 선수부족 등 여건의 불리함을 딛고 선전했으나 우승컵 탈환에 실패, 준우승에 만족했다.
3. 후원금도 잇달아
전주고 대붕기 준우승 나흘 후, 전주지역 초·중·고 야구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한 뜻 깊은 행사가 2007년 7월 20일 전주시 아중리 아리랑하우스에서 열렸다.전주고야구부 후원회(회장 김생기)가 마련한 이 행사에는 전주고를 비롯해 전라중 및 진북초등 야구부와 학부모, 체육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전주고야구부 후원회는 최근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서 준우승을 차지한 전주고 야구부를 축하하고 전라중과 진북초등 야구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 3개 학교에 대해 각각 야구부 후원금과 야구용품을 전달하고 선수들을 격려했다.김생기 회장은 “전주의 야구 꿈나무들이 타 시·도의 학교로 전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안타깝다”며 “전주고 야구부가 각종 전국 대회서 상위 입상하는 등 특기자로서 대학 진학의 문도 활짝 열려 있는 만큼 지역에서 열심히 야구에 전념해달라”고 당부했다.
전주고 야구부 후원회는 이듬해 2008년 11월4일에도 서울 갤러리아 웨딩홀에서 ‘전주고야구부 후원의 밤’을 성황리에 열었다.
후원회 김생기 회장 및 집행부, 대한체육회 이연택 회장을 비롯한 동문 등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후원회측은 전주고 지영호 교장에게 후원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또 바리톤 우주호와 친구들, 피아니스트 소현정씨의 공연에 이어 전주고 야구부 선수들의 사인볼 증정 등도 마련됐다.
전주고 야구부는 1998년 제20회 대붕기 전국고교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후 한 동안 침체를 겪었다.이후 2006년 제87회 전국체전 우승과 2007년 대붕기 대회 준우승 등 호성적을 거둔 데는 전주고 야구부 후원회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2001년 김생기 동문(62회·서울 나래코리아 대표)이 주축 되고 직접 회장을 맡아 조직한 후원회는 설립 이후 5년간 1억5,000만원을 모금해 모교에 전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후원회는 먼저 선수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숙소 개선에 나섰으며 지난 1985년 황금사자기 대회 우승 주역이자 국가대표팀 투수를 지낸 박성기 동문(64회)을 감독으로 영입해 선수단을 정비하는 한편 선수 스카웃에도 앞장섰다.
도내 초·중학교 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도내 출신 선수들의 타지 진출은 전주고로서 치명적이었다.이에 후원회는 도내 선수들의 도내 고교, 특히 전주고 진학을 위해 적극 노력했다.
전주고야구부후원회 임원진은 다음과 같다.
△자문위원 박명균, 방무웅(이상 39회) △명예회장 이현수(40회) △고문 허영창(35회), 고형칠(39회), 김학섭(40회), 이종익(43회) △전주지역 집행위원장 소재필(57회) △서울지역 집행위원장 곽세열(57회) △회장 김생기(62회) △부회장 소점석(63회) △총무 하진석(63회) △대변인 신동윤(64회) △총괄위원 이은영(49회) △홍보위원 송재규(56회) △이사 박영기(56회), 이용승(57회), 김양욱, 김호선(이상 59회), 송병훈(60회), 김용, 배형희(이상 61회), 김민재, 공흥표, 강경진, 하경환, 임철우, 정한진, 김영현, 채성환, 유희준, 김영천(이상 62회), 강석환, 김천훤(이상 63회), 강남식, 권혁, 박성기(이상 64회), 강찬영(65회), 김재이(70회).
제3절 ‘야구 전고’ 중흥을 향해
- 전주고 야구부, 선수 부족으로 대회 불참
창단 34년째를 맞은 전주고 야구부가 선수 부족으로 2011년 출범한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 리그에 불참했다. 대한야구협회 관계자는 “전주고가 등록 선수 최소 정원인 18명을 채우지 못해 전반기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6월부터 열릴 후반기부터 참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회에 등록된 전주고 야구 선수는 모두 4명, 1학년이 3명이고 3학년이 1명이었다. 1977년 창단한 전주고는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와 더불어 전북 야구를 대표해왔으나 몇 년 전부터 선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급기야 2011년 9명이 한꺼번에 졸업하면서 팀을 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 이종익 전 재경동창회장, 야구부에 5천만원 쾌척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역시 또 선배가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이종익 전 재경동창회장(43회)은 2012년 2월 13일 모교 야구부에 발전기금 5,000만원을 쾌척했다. 이종익 동문은 “침체된 모교 야구부를 하루 빨리 활성화해 옛 명성을 되찾기 바란다”며 거액을 모교 야구부에 전달했다.
또한 2013년 1월 1일 ㈜부영 이중근 회장은 전고 야구부 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기탁했으며 이듬해 2014년 1월 1일에도 1억원을 기탁하는 등 모두 3회에 걸쳐 총 3억원을 전고에 기탁했다. 이어 2017년 4월 21일 전주시야구소프트볼협회 서형수 회장이 전주고 신정균 교장에게 야구발전기금 1,000만원을 전달하는 등 야구부 후원이 잇달았다.
- 전주고 야구부, 후원 화답 우승 ‘시동’
전고 야구부는 선배 및 기업의 후원에 힘입어 2017년 9월 22일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열린 2017 전라북도지사배 야구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전고는 군산상고를 7대 0으로, 영선고를 7대 4로 연파하고 우승컵을 안았다.
전고는 이어 2019년 7월 31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도 선전했으나 서울 배명고에 3대 6으로 패해 준우승했다. 전주고는 3학년 박재민, 탁건, 이용빈, 홍준혁으로 이어지는 최강 마운드를 자랑하며 대회를 통틀어 준결승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으나 결승전 7회에만 5실점 하며 석패, 아쉬움을 남겼다. 전국 41개 팀이 참여해 열띤 경쟁을 벌인 이 대회 32강에서 전주고는 서울고를 2대 0으로, 16강에서 양산 물금고를 7대 0 콜드게임으로 물리쳤다. 이어 8강전에서 김해고를 8대 0으로, 4강전에서도 경북고를 3대 0으로 누르며 결승에 오른 전주고는 결승전에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쉽게 패했다.
그러나 전고 야구부는 2006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이후 전국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전국규모 야구대회에서 준우승, 마침 개교 100주년을 맞은 모교에 큰 선물을 안기며 장래 불씨를 밝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제4절 프로야구 무대의 전고인
황금사자기 우승(1985), 전국체육대회 우승(1979, 2006), 대붕기 우승(1998) 등으로 전국 고교야구 명문으로 확실하 게 자리잡은 전고야구는 프로 무대에서도 빛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프로야구 보스톤 레드삭스 투수던 조진호 동문(69회) 외에 2000년대 들어서는 박경완, 김원형, 박정권, 최형우 등 전고 출신이 한국프로야구를 이끌고 있다.
박경완
박경완(68회·SK와이번즈 감독대행) 동문은 고교 졸업 직후인 1991년 프로 무대(쌍방울 레이더스)에 뛰어들어 고졸 출신 포수로서 내로라 하는 투수들과 기싸움을 벌이며 한국 최고의 포수로 우뚝 섰다. 쌍방울 레이더스와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SK와이번스에 입단한 그는 명장 김성근 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으며 팀의 주전 포수로서 SK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0년 창단한 신생 구단 SK는 박 동문 현역 시절(2003~2013) 한국시리즈 우승 3차례(2007, 2008, 2010), 준우승 4차례(2003, 2009, 2011, 2012)를 거두는 등 단기간에 한국 최고의 명문 프로 구단으로 도약했다. SK 구단은 박경완 동문의 업적을 기려 그의 은퇴식에서 박 동문 배번인 26번을 영구결번 처리하는 영예를 선사했다. 박경완 동문은 2000 한국시리즈 홈런왕 및 MVP(40홈런-95타점), 한국 프로야구 첫 한 경기 4연타석 홈런(2000.5.19. 대전한밭구장, 한화이글스 전), 포수 첫 20-20 가입(2001년, 24홈런-21도루), 포수 첫 300홈런 달성(2010.4.30, LG트윈스 전) 등의 기록을 세웠다.
김원형
김원형(68회·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동문은 박경완 동문과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같이 한 영혼의 배터리이다. 둘은 졸업 직후 나란히 전주 연고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으며 선수 은퇴도 같이 SK와이번즈에서 하면서 오랫동안 서로 던지고(김원형) 받으며(박경완) 프로야구 정상에서 전고인의 우정을 나눴다. 김원형은 고교 시절부터 촉망받던 에이스로 고교 졸업 후 쌍방울이 고려대학교와 치열한 경쟁 끝에 스카웃했으며 입단(1991) 직후부터 당시 신생팀 쌍방울(감독 김인식)의 1군 선발로 마운드에 섰다. 김원형 동문은 프로 무대 첫 최연소 완투승, 최연소 완봉승을 거둬 주목받았다. 특히 이 최연소 완봉승(만 19세 1개월 10일)은 1991년 8월 14일 광주 해태 전에서 거물 투수 선동렬을 상대로 거둔 1-0 완봉승(타점 김기태)이라 프로야구 관중들을 흥분시켰다.
김원형 동문 최고의 기록은 1993년 4월 30일 전주구장에서 OB 베어스를 상대로 세운 최연소(만 20세 9개월 25일) 노히트 노런(6탈삼진, 1사사구)이다. 이는 지금도 안 깨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이며 또한 고향 전주에서 나온 처음이자 마지막 노히트 노런이어서 한층 뜻깊다. 김 동문은 쌍방울 해체 후 SK와이번스의 창단 멤버가 됐으며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의 창단 첫 우승을 동기 박경완 동문과 합작했다. 그는 최동원 이후 최고의 커브볼러로서 선수 시절 ‘커브의 장인’으로 불리웠다. 김원형 동문은 2012년 프로야구 개막식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했다. 그 한 해 후 2013년 시즌을 끝내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프로 무대를 함께 했던 박경완 동문도 마스크를 벗었다. 포수였던 선수 시절 포지션답게 박 동문은 시구가 아닌 시포자로 등장했고, 시구자는 그의 평생 절친이자 영혼의 배터리인 김원형 동문이 맡았다. 수만 관중 앞에서 김원형 동문이 공을 던지고 박경완 동문이 받아서 2루로 도루 저지하듯 던지는 형식으로 ‘시구-시포’ 행사가 이루어졌고, 이로써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21년 차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장수 배터리가 서로에게 마지막이 된 한 개의 공을 던지고 받으며 프로 생활 20여 년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었다. 이들 배터리의 마지막 대화는 다음처럼 간단했다.
“ 박경완: “원형아!” 김원형: “이게 마지막 공이다.” 박경완: “그래, 고맙다.” 김원형: “수고했다.”
박경완: “어... 고맙다!”“
박정권
SK의 ‘영원한 4번’ 박정권 동문(77회)은 한국시리즈 등 결정적일 때마다 ‘한 방’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지난 2019년 10월 현역 은퇴, 현재는 SK 2군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최형우
박정권 동문과 쌍벽을 이루는 거포 최형우 동문(79회)은 삼성 라이온즈 4번 타자를 거쳐 2017년 이후 기아 타이거즈 지명 타자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그는 삼성 시절인 2011 시즌 프로야구 타점 1위(118점), 홈런 1위(30개), 2016년 타율(0.376), 안타(195개), 타점(144점), 2루타(46개) 등에서 모두 1위를 하는 등 전성기를 구사하다 최근 기아 유니폼을 입고 불방망이를 재점화해 고향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박정권, 최형우 동문 모두 좌타자이며 2년 선후배인 이들은 한국시리즈에서 각자 팀을 대표해 방망이를 겨루기도 했다. 최형우 동문은 KBO리그에서 최초로 FA 100억원 시대를 연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1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기아로 둥지를 옮길 때 4년 100억원(계약금 40억원, 연봉 15억원)에 계약했다. 2020 시즌 중반인 7월 말 현재 그는 시즌 63경기에 출전해 팀 내 안타 2위(73개), 타점 공동 2위(43타점), 홈런 2위(10개)에 올라있다. 무엇보다도 팀이 위기에 몰릴 때나 꼭 ‘한 방’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내 기록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 최경철(76회·SK 포수), 신용운(79회·기아→삼성 투수), 추경식(79회·롯데→SK 내야수), 신승현(79회·SK→기아 투수) 동문 등이 전고 출신으로 프로야구 다이아몬드를 누볐다.
제7장 학생회 활동
제1절 학생 워크숍, 새로운 세기의 출발점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이는 학교 교육이 지식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적응 교육, 대인 관계 교육, 궁극적으로는 민주시민 양성 교육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전주고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새롭고 현실적인 학생 자치 교육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며, 학생회 운영의 혁신을 통해 많은 부분을 이뤄냈다. 전주고는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라는 오래된 말을 현실화하기 위해 힘썼다. 이를 위해 전주고는 2017년부터 학생 간부 워크숍을 제대로 된 학생 자치 운영 기구 훈련으로 개선하였다.
종전의 학생 간부 워크숍은 토론과 성숙의 장이라기보다는 수련회에 가까운 형태였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리더십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 행사로, 저명한 인사들의 강의를 듣거나 지리산 정상을 정복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학생회 학생들은 자신감을 길렀다. 그러나 실제적인 학교 운영 및 학생 자치 활동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에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이에 전주고는 전면적인 계획 수정을 통해 수련보다는 토론과 협의의 장으로 이 행사를 만들어 나갔다. 회장단 3인, 각 부의 부장과 차장 및 대의원회 의장과 부의장 22인, 총 25명의 학생회 간부들이 모여 워크숍의 일정을 기획하였다. 이 일정에서는 체육대회나 축제 등 기존부터 해왔던 학생 자치 행사는 물론, 학생 생활 교육이나 학력 증진, 사제 간의 정을 깊게 할 수 있는 방안 등 1년 동안의 모든 교육 활동이 토론의 주제로 채택되었다.
학생회는 8개의 모둠을 구성하여 각각 토론 주제를 설정하고 전 학년의 실장들로 이루어진 대의원회와 함께 사전 협의에서 각 모둠을 구성했다. 각 모둠에는 1~2인의 지도교사가 토의에 함께 참여했다. 의견 개진은 되도록 하지 않되, 무리수가 있는 의견이 나오거나 토론이 정체되면 적절히 방향을 조정하였다. 해마다 15명 정도의 교사들이 학생 활동의 지원을 위해 기꺼이 지도교사로 자청했다.
1박 2일 동안의 워크숍은 대단히 빨리 지나간다. 총 8시간에 걸쳐 모둠 토의가 이루어지고 3시간 동안 모둠 토의 결과 발표 및 질의응답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피곤에 지친 모습과 열의에 가득 찬 눈빛이 한 얼굴에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은 본인의 의견에 따라 학교의 교육과정이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기대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가장 눈에 띄게 변한 부분은 학생 자치 행사였다. 교사는 안내자가 되고 학생이 기획자가 되니 일이 빨라졌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의견이 나오면 교사들이 친절히 다른 길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은 학교의 시스템과 교육자의 마음 및 한계를 공감하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노송체육한마당(체육대회)은 이 토의에서 거의 모든 사전 협의가 이루어졌고, 노송어울마당(축제) 역시 기획의 큰 가닥이 얼추 잡혔다. 5월의 행사가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치러진 데에는 바로 이 워크숍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학생 생활 교육에 관한 내용 또한 학생들의 가슴에서 출발하여 교사들의 머리를 거쳐 학생들의 손발을 통해 이루어졌다. 과거 선도부의 서슬 퍼런 지도 방식이 아니었다. 생활 지도 부분에 대한 토의를 맡은 분임의 학생들은 ‘학생은 학생을 선도할 수 없다’는 대전제 하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결론은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함께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캠페인 활동 등을 벌이는 것으로 나왔다. 과거의 방식에 비해 시간은 더 걸릴 것이나 훨씬 더 교육적인 방향일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이 외에도 전자기기의 사용 요령이나 학생들의 잘못된 언어 문화에 대한 논의 등이 이루어졌다. 사회의 어떠한 정치인들보다도 진지하고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인 학생들을 보며 자리한 모든 교사들은 그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사실 이 워크숍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루어지는 쪽이 더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워크숍은 학생들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는 실제로 학교의 주인이 되는 활동임과 동시에 민주시민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의 교육 활동이기 때문이다.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행사의 교육 목표는 상당히 이루어진 것이다.
제2절 학생 자치행사
어느 학교나 축제 및 체육대회 등의 굵직한 학교 행사가 있다. 이 모든 행사들은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배움을 주는 교육 활동이라는 점이 전제된다. 이러한 큰 틀에 대한 개념을 심어준 후, 학생들에게 운전대를 맡긴다. 다소 불안한 마음은 보기 좋게 기우가 될 정도로 학생회는 학생 자치 행사들을 매우 교육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교사의 입장에서 추진했다면 구식의 통제로 전락했을 법한 내용들이 학생들의 추진 속에서 이루어지니, 말 그대로 학생 자치가 실현되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요구한 내용에 대해 적극 협조하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해결책을 위한 힌트를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모든 학생들은 지혜로운 지도자의 역할과 충실한 이행자의 역할을 번갈아 감당했다.
전주고의 축제인 ‘노송어울마당’은 공개적인 행사이다. 학교의 일과가 끝나는 16시 30분부터는 주민들 및 타 학교 학생들이 교내로 들어와 함께 참여한다. 먹거리 부스와 활동 부스가 함께 어우러진 행사장에서 1천 명에 가까운 외부인들이 함께 행사를 즐기는 모습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학생회는 동선과 안전 등을 포함해 모든 것을 운영한다. 시간 안배나 뒷정리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좋아지고 있다.
체육대회 또한 축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행사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활기 넘치는 체육 활동을 바라보며 응원과 격려에 집중할 수 있다. 경기의 운영이나 안전에 관한 대부분의 업무를 학생들이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기는 미리 신청받아 선발한 학생 심판진이 담당하며, 본부석에는 한두 명의 교사와 십여 명의 학생들이 있다. 교사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학생들이 모든 경기 및 순서를 운영한다. 과열되기 쉬운 체육대회의 특성상, 심판을 교사가 보게 되면 사제 간에 민망한 모습이 연출될 수 있지만, 본교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교사들은 경기장으로 직접 가서 해당 학급 학생들과 소통하며 응원한다.
이 외에도 학생회는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학교는 가르침의 공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완전한 요소들이 많다. 완벽을 요구하기보다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현장의 모습일 것이다. 학생들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학생회는 스스로 자정작용을 펼친다. 사진은 날이 더워지면서 등교 복장이 점점 해이해지자 학생회가 벌인 캠페인의 현장이다. 한 사람은 단정하게 교복을 착용하고, 반대편의 사람은 맨발에 잠옷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캠페인의 문구는 ‘아름다운 전고인의 모습은?’이다.
제3절 입법기관 학생회, 미래를 내다보며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원의 가장 큰 역할은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드는 일이다. 사회의 삼권분립 체제와 학교의 학생회의 구성은 다소 다른 면이 있지만, 학생회 및 대의원회의 가장 큰 과업은 역시 학생과 관련된 규정을 제정, 개정하는 역할일 것이다. 보통 학교생활규정(전고는 ‘학교생활안전인권규정’)은 주로 교사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전주고는 학생자치교육의 활성화와 학생 스스로 성장하는 학교를 이루기 위해 학교생활규정 제·개정을 위한 워크숍을 마련하여, 학생회 및 대의원회가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물론 학교생활규정이 개정되려면 학생회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등으로 이루어진 ‘개정위원회’를 개최해야 한다. 학생회는 해당 위원회가 개최되기 전 제정해야 할 부분과 개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 1박 2일의 시간 동안 충분히 논의한다. 그들은 학교의 주인으로서, 동시에 선출된 임원으로서 본인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학생회의 존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학생자치행사 실시나 질서유지 등 현재의 과업을 위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짧게는 내년, 길게는 수십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고등학교 삶은 3년 시한부이고, 학생회 활동은 그중에서 1~2년 동안 하는 일이다. 학생회가 현재만 생각한다면 매년 답습하는 것으로 그 활동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주고 학생회는 매년 12월 31일,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를 맞이하는 ‘해맞이 행사’를 치른다. 이는 단순히 연초 새로운 태양을 보기 위함이 아니다. 학생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학교가 추구해야 할 비전을 함께 나누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다. 1박 2일 동안 학생들은 ①사제(師弟) 동행 걷기 활동 ②1년 활동 반성회 및 미래의 비전 제시를 위한 협의회 ③신년 해맞이를 통한 새해 다짐 등의 활동을 진행한다. ‘2018-2019년’ 신년 행사에도 모든 학생회 임원들이 참여하여 ‘해파랑’ 10길 14km 코스를 걸으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4시간 동안 협의회를 진행했다. 이어 그들은 수평선에서 타는 듯이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했다. 전주고등학교의 미래는 언제나 밝다는 것, 학생회가 그 주축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전주고 학생회는 언제나 학생의 대변인이자 학교 발전 원동력이 될 것임을 그들은 다짐했다.
제8장 특별활동 =
제1절 동아리 편성
전주고등학교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살펴보기 위해 2000년도 2월에 발행된 교지 ‘노송원’(제43호)에 수록된 동아리와 2019학년도 교육계획서에 수록된 동아리를 비교하였다(표 1, 2). 이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의 동아리의 숫자와 유형 및 특성 변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20년이 넘는 활동을 이어온 동아리들을 찾기 위한 자료는 ‘노송원’ 43호(1999년)부터 61호(2018년)까지를 참고하였다
첫째, 1999년에 비해 2019년의 동아리 숫자는 약 2.5배 증가하였다. 20년 전에는 31개 동아리가 있었으나 현재는 77개의 동아리가 조직되어 있다. 이전에 비해 학생들의 숫자가 거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큰 변화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에 조직된 모든 동아리가 교지에 수록되어 있었다는 가정하에서의 추론이다. 이러한 변화를 유도한 가장 큰 이유는 이전에 비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동아리 활동 내용이 입시 전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요즈음 고등학교 재학생들은 정규 동아리 외에 자율 동아리에까지 참가하여 활동하고 있다. 덧붙여 20년 전의 동아리는 정규 동아리와 자율 동아리가 뒤섞여 있던 반면에, 2019학년도의 자율 동아리는 44개로 정규 동아리와는 별도로 편성되어 있다(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