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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고 북중 100년사와 <br> | | 전주고 북중 100년사 <br> |
| 사진으로 보는 전주고·북중 100년사 책의 내용입니다 <br> | | 사진으로 보는 전주고·북중 100년사 책의 내용입니다 <br> |
| == 1 ==
| | 신정균 23대 교장선생님께 기재를 허가받았습니다. |
| | 기여자 장영환 |
| === 역대 교장=== | | === 역대 교장=== |
| 제1대 김용환, 제 2대 김가전 제3대 유청, 제4대 배운석, 제5대 김신직, 제6대 공원택, 제7대 이종표, 제8대 최도철, 제9대 신강호, 제 10대 최득엽, 제11대 김병문, 제12대 김순만, 제13대 유재신, 제14대 하재홍, 제15대 이기원, 제16대 김성하, 제17대 공귀섭, 제 18대 황기연, 제 19대 오근량, 제20대 지영호, 제21대 백창기, 제22대 이원택,제 23대 신정균, 제24대 박진홍, 제25대 김정기, 제26대 라구한 | | 제1대 김용환, 제 2대 김가전 제3대 유청, 제4대 배운석, 제5대 김신직, 제6대 공원택, 제7대 이종표, 제8대 최도철, 제9대 신강호, 제 10대 최득엽, 제11대 김병문, 제12대 김순만, 제13대 유재신, 제14대 하재홍, 제15대 이기원, 제16대 김성하, 제17대 공귀섭, 제 18대 황기연, 제 19대 오근량, 제20대 지영호, 제21대 백창기, 제22대 이원택,제 23대 신정균, 제24대 박진홍, 제25대 김정기, 제26대 라구한 |
| == 1919~1929 == | | ==[[전주고 1910~1920년대]]== |
| ===동맹휴학===
| | {{참고|전주고 1910~1920년대}} |
| =====사건전개===== | | ==[[전주고 1930~1940년대]]== |
| 전주고등학교는 개교 당시 조선교육령에 의해 한국인에게만 입학자격을 준 4년제 한국인 학교였으나, 1922년 신 교육령에 의해 일본인도 입학 가능한 5년제 한일 공학 학교로 개편되었다, <br>
| | ==[[광복의 격랑 속에서]]== |
| | | ==[[전주고 1950년대]]== |
| 이때 전환기에 처한 재학생들은 시험을 거치고, 5년제 고등보통학교의 상당학년에 편입됐으며, 일본학생들과 갈등을 겪는등 문제가 생겼다, <br>
| | ==[[전주고 1960~70년대]]== |
| | | ==[[전주고 1980년대]]== |
| 4년제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던 학생들은 일제식 교육이 불만스러운데다, 수학 연한이 연장되는 신학제를 마땅치 않게 여겼으며, 검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부담마저 안게 되었다,
| | ==[[전주고 1990년대]]== |
| | | ==[[전주고 2000년대]]== |
| 1924년 마침내 쌓인 불만이 터져 중간고사를 거부하고, 동맹휴학을 벌이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가뜩이나 3·1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탄압으로 좋지 않던 분위기에, 일인 교사들은 한인학생들이 한국어를 쓰면 그 벌로 변소 청소를 시키는등, 이른바 당번청소를 시켰다, 학생들은 이러한 처사가 "한국인의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것이며, 교원 조직도 불만스러우니 무자격 교사를 유자격자로 교체해 줄것과 모든 시설을 학생 편의 의주로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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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내면적으로는 일제와 일본인에 대한 저항의식이 이유였다, 동맹휴학의 주역들은 전주시 교동 낙수동골에서 희동하여 기념사진을 찍은뒤, 맹휴를 결의하여 결행했다, <ref>다만 그 당시 학교장이였던 다카기 요시토가 학생문제는 학내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으로, 경찰의 개입을 적극 제지하여 체포된 학생은 없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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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맹휴학에는 전교생이 참여했지만, 주동은 3학년이었다, 이는 4,5학년 학생들의 진학과 취직에 지장이 없도록 3학년 학생들이 주모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써 3학년 생들은 무더기로 퇴학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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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학생들은 명퇴학<ref>학교 명령으로 퇴학</ref>이 됐고, 다른 일부는 자원퇴학<ref>스스로 원해서 퇴학함</ref>으로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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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원퇴학은 표면적으로만 자신이 원한것으로 가장됐을뿐, 실제로는 일제와 학교당국이 갖은 수단과 압력으로 학생 스스로 학업을 포기토록한 악랄하고 비열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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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퇴학자<ref>서병우, 정사섭, 조동빈, 장운종, 김종주, 김형태, 김태용, 김화봉, 김동석, 유격근, 유한상, 이준형, 고수장, 성경주, 이은영, 김영흡</ref>''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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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 퇴학자<ref>백상용, 백남진, 이종기, 문중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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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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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고등보통학교 최초의 동맹휴학은 지역사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으며, 일반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대상이 됐다, [[File:KakaoTalk_20240809_142944593.jpg|200px]][[File:KakaoTalk_20240809_142944593_01.jpg|200px]][[File:KakaoTalk_20240809_142944593_02.jpg|2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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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교장 추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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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 194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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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 | |
| == 1970~ 1989 == | |
| == 1990~ 현재 == | |
| == 야구, 농구 == | |
| == 2000년대 == | |
| == 100주년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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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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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고 북중 100년사
사진으로 보는 전주고·북중 100년사 책의 내용입니다
신정균 23대 교장선생님께 기재를 허가받았습니다.
기여자 장영환
역대 교장
제1대 김용환, 제 2대 김가전 제3대 유청, 제4대 배운석, 제5대 김신직, 제6대 공원택, 제7대 이종표, 제8대 최도철, 제9대 신강호, 제 10대 최득엽, 제11대 김병문, 제12대 김순만, 제13대 유재신, 제14대 하재홍, 제15대 이기원, 제16대 김성하, 제17대 공귀섭, 제 18대 황기연, 제 19대 오근량, 제20대 지영호, 제21대 백창기, 제22대 이원택,제 23대 신정균, 제24대 박진홍, 제25대 김정기, 제26대 라구한